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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책&영화 리뷰

리처드 파워스, The Time of Our Singing 서평

by 피타칩스 2015. 10. 19.



리차드(리처드) 파워스는 미국에서 엄청 유명한 작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나 인지도가 있는 작가입니다. 주로 SF 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입니다. 리처드 파워스의 유명작들은 1995년 SF 소설인 갈라테이아 2.2 (Galatea 2.2)와 2014년에 쓴 Orfeo가 있습니다. The Time of Our Singing은 그렇게 많이 알려진 소설은 아니지만, 클래식음악 중 리드(Lied)에 관심이 많거나, 흑인 인종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읽어봐도 좋은 글입니다. 


하지만 대부분 외국서적들이 그렇듯이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구하기 어렵고 온라인으로 구입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해외도서 구매로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었지만, 저는 아마존에서 킨들 eBook으로 구매했습니다. 처음 이용해보는 킨들이었는데, 생각보다 괜찮았습니다.



리처드 파워스 주요저서

1985 Three Farmers on Their Way to a Dance, HarperCollins ISBN 0-688-04201-5

1988 Prisoner's Dilemma, McGraw Hill ISBN 0-07-050612-4

1995 Galatea 2.2, Farrar Straus & Giroux ISBN 0-374-19948-5

1998 Gain, Farrar Straus & Giroux ISBN 0-312-20409-4

2003 The Time of Our Singing, Farrar, Straus & Giroux ISBN 0-374-27782-6

2006 The Echo Maker, Farrar, Straus & Giroux ISBN 0-374-14635-7

2014 Orfeo, W. W. Norton & Company ISBN 978-0-393-24082-5




The Time of Our Singing

저자
Powers, Richard 지음
출판사
Picador USA | 2004-01-01 출간
카테고리
문학/만화
책소개
On Easter day, 1939, at Marian Ande...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혼혈 삼남매의 삶을 통해 보는 인종프레임과 그 극복 


조나(Jonah)와 조이(Joey), 그리고 루스(Ruth)는 미국 땅 절반에서 흑백인종 간 결혼이 불법이던 시기에 흑인인 딜리아(Delia), 백인 유대인인 데이비드(David) 사이에서 태어난 세 명의 혼혈 자녀다. 첫째 아들인 조나가 셋 중 가장 하얬고, 막내딸인 루스가 가장 어두운 색의 피부를 가졌다. 이 세 자녀들은 태생적으로 인종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온 가족이 택시를 타려고 할 때면 수차례 탑승거부를 당할 것을 각오해야 했고, 운 좋게 성공하더라도 엄마인 딜리아는 유모인 척 뒷좌석에 타고 아이들도 그 연기에 동참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조나는 딜리아에게 자신들은 도대체 무엇인지를 묻는다. 


"엄마는 흑인이고, 아빠는 유대인이면… 그럼 저랑 조이랑 루스는 뭐가 되는 건가요 Mama,” he asked. “You are a Negro, right? And Da’s … some kind of Jewish guy. What exactly does that make me, Joey, and Root?"


 "너희들은 너희 그 자체란다 You two boys are one of a kind" 라고 딜리아는 대답했다.


딜리아의 대답이 원론적으로 틀린 말이 아니지만, 세상은 삼남매를 그렇게 보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혼혈이라는 인종으로써 이해되었고, 심지어 본인조차도 그러한 시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희지도 검지도 않은 이 아이들의 피부색은 어딜가나 주목의 대상이었다. 삼남매는 아주 일찍부터 자신들이 '혼혈'과 '인종'의 프레임 속에서 이해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것을 깨달았다고 해서 그 프레임에 순응하지는 않았다. 당시에 혼혈은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프레임이기에 이를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삼남매는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발버둥쳤고, 그 과정에서 진정한 자기자신을 찾아간다.


첫째 아들인 조나는 천상의 목소리를 타고난 아이였다. 처음엔 흑과 백을 정확히 반반 섞어놓은 듯한 피부색이 사람들로 하여금 이 아이를 쳐다보게 만들었지만, 나중에는 이 아이의 목소리에 모두가 탄성을 내지르곤 했다. 조나는 세상을 놀라게 할 만큼 아름다운 목소리와 능력을 가진 천재소년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인종적 프레임을 극복하고자 했는데, 그가 취한 극복방법이라는 것은 무대 위를 유일한 해방구로 삼는 것이었다.  


조나는 사회운동가 기질이 있는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그저 노래를 잘했고 노래하는 것이 좋은 한 명의 천재였다. 천재 조나는 무대 위에서만큼은 어떠한 인종도 되고싶지 않았고 I don’t want to be any race 관객들이 혼혈인 조나가 아닌 음악가 조나를 봐주길 원했다.  그는 "음악은 단순히 우리의 정체성 위에 잠시 덮어씌워지는 것이고, 관객은 결국 무대 '위'의 사람이 노래하는 것을 듣는 것뿐 Music was just what we put on, after we put on ourselves. How a piece sounded to its listeners had everything to do with who was up there making the sound" 이라고 말한다. 


조나가 취한 이 방법은 꽤나 잘 굴러가는 듯 보였다. America's Next Voice에서 백인을 제치고 우승을 거머쥐는 한편, 든든한 후원자까지 얻는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그에게 흑인의 프레임을 씌워 깎아 내리려는 비평가와 관객은 늘어날 뿐이었고, 본인 스스로도 무대 위와 무대 밖의 괴리에 괴로워한다. 그는 미국에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미국을 떠나 유럽으로 도피하지만, 유럽에서도 그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었다. 결국 이 괴리감은 조나를 천천히 질식시킨다. 


한편, 삼남매 중 막내딸인 루스는 가장 어두운 피부를 가져 흑인이라고 하기에 전혀 무리가 없었다. 이런 루스에게는 자신이 외형적으로는 99퍼센트 흑인이지만 사실은 백인 아빠를 둔 흑인이라는 것이 극복해야할 숙제였다. 백인의 딸이라는 것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을 혼란케했기 때문이다. 백인 사회에 끼지 못한다는 것은 애초에 걱정할 거리가 아니었다. 문제는 아무리 피부가 검을지라도 백인아빠를 두었다는 사실이 그녀에게 주는 죄책감과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흑인 사회에도 온전히 낄 수 없다는 데에 있었다. 


그렇기에 루스는 더더욱 과격한 흑인운동에 발을 담그게 된다. 그녀는 자신을 완벽한 흑인으로 인정하고, 또 인정받기 위해 과격파 무장 흑인운동 단체인 흑표범단(Black Panthers)에 가입하며, 스스로에게 이분법적 흑백구도를 세뇌시킨다. 이 구도를 가족에도 들여와 아빠와 조나를 백인으로, 자신과 조이를 흑인으로 구분지으려 한다. 특히, 자신의 뿌리는 백인 아빠가 아닌 흑인 엄마라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둘째인 조이는 자신에게 씌워진 인종적 프레임에 어떤 식으로 대응했을까? 이 소설 속의 서술자이자 가장 평범하고 소심해보이는 조이는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조이는 형과 같은 능력을 가지지도, 동생과 같은 막무가내 용기도 가지지 못한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계속되는 형과의 비교 속에서 멍청해보이고, 동생의 힐난 속에서 비겁한 사람으로 비춰지지만 그 모습은 그 당시 평범한 흑백혼혈의 모습이다. 스스로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충분한 수단과 힘이 없는 상태에서 소시민인 조이는 그저 불합리한 현실에 분노하지만, 어찌할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자신의 불안한 중간자적 위치를 감내하는 모습을 보인다. 낮은 자존감 속에서 조이는 적극적인 행동을 거의 취하지 않는다. 명백히 드러나진 않지만, 조이의 말과 행동에서 나는 "난 안될거야" 라는 마인드를 보았다. 한 마디로 말해, 조이의 언행의 가장 깊은 뿌리에는 패배의식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이는 천재적이진 않지만 노래를 곧잘 부르곤 했다. 형인 조나와 비교해서 떨어지는 것이지 평범 이상의 노래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을리 없다며 형인 조나에게만 음악적으로 천부적인 재능이 있다고, 자신은 보조자인 반주자로서도 행복하다며 성장하기를 거부한다. 보일스톤 아카데미(Boylston Academy)에 다닐 때부터, 조나가 극단적으로 독일로 떠나버리기 전까지 조이는 조나를 따라다니며 거의 10년간 반주를 해준다. 몇 번 조나를 떠나려고 시도하지만 번번이 조나의 부탁에 붙잡히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저자세로 엎드리는 조이의 모습은 백인 주인과 흑인 노예의 모습을 연상시키면서, 개인의 삶까지도 곪게 만드는 인종 프레임의 강력함에 경악하게 된다.


한 가지 예를 더 들자면, 조이는 딜리아와 데이비드의 인종을 뛰어넘은 사랑, 혹은 새와 물고기의 비현실적인 생물학 '실험'이 자신과 조나, 그리고 루스를 만들어냈고, 온갖 차별과 편견에 시달려야 하는 삶까지도 만들어냈다고 보았기 때문에, 조이는 혼혈인 자신이 아이를 낳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백인인 테레사와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테레사의 프로포즈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미리 두려워하여 결혼을 포기하고 테레사에게 급작스러운 이별을 통보하게 된다. 


조이는 이처럼 패배의식에 쩔어있는 사람이었지만, 이 소설의 끝에서 극적으로 패배의식을 극복하고 자신이 사회를 조금은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된다. 이러한 삶의 전환점은 조나가 독일로 떠난 이후에 찾아왔다. 조이는 더 이상 반주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조나가 노래하고 있는 Voces Antiquae라는 앙상블 그룹에 합류한 것이다. 조이는 그곳에서 노래는 부르며 더 이상 조나의 등 뒤에서 반주해주는 그림자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본인을 드러내는 한 명의 진정한 사람이 된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더 극적인 결말을 준비해놓고 있다. 조이는 어느 날 동생인 루스의 전화를 받고 오클랜드(Oakland)로 되돌아가게 된다. 루스는 남편인 로버트(Robert)와 학교를 열고자 했는데,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로버트가 죽임을 당했고, 이에 조나에게 연락이 닿았던 것이다. 조이는 로버트를 대신하여 루스와 함께 New Day Elementary School을 개교하게 되고, 조이는 여기서 인종적 프레임을 극복해나갈 실마리를 얻게 된다. 그가 Voces Antiquae에서 인종문제를 개인적으로 극복할 힘을 얻었다면, 이 학교는 인종문제를 사회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해주는 곳이었던 것이다.


어느 날, 조이와 달리 여전히 Voces Antiquae에 소속되어 유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나는 조이와 루스가 일하고 있는 학교에 방문하기로 했다. 우연히도 이 날은 조이가 학생들을 데리고 즉흥 합창을 가르치는 날이었다. 노래 소리가 너무 커서 옆 교실 사회교사가 찾아올 정도였는데, 그 즉흥 합창의 아름다운 모습에 이 사회교사도 노래에 합류하고, 그 옆 교실 수학선생님, 또 다음 옆 교실 선생님들도 옆에 와서 템포에 맞춰 박수를 치면서 합창은 점점 더 커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바로 이 때, 천상의 목소리를 가진 조이가 등장한다. 


"새와 물고기도 사랑을 할 수 있지 Bird and fish can fall in love"


아름다운 조이의 목소리가 즉흥 합창에 더해지며 노래는 더욱 더 절정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이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루스가 구슬픈 목소리로 한 소절을 더한다. 


"하지만 어디에 둥지를 틀어야할까 But where will they build their nest?"


격렬하게 대립했던 조나와 루스가 서로 생각은 여전히 다를지라도 이 노래를 통해 화합하는 모습을 보면서 조이는 프레임보다 더 위대한, 혼합의 생명력(hybrid vigor)을 확인한다. 어렸을 적 베이스를 담당하던 유대인 아빠, 소프라노 담당 흑인 엄마, 조나와 조이, 그리고 이제 막 걸음마를 뗀 루스까지 다함께 재즈와 클래식을 넘나들며 마음껏 노래를 불렀던 Crazed Quotation 놀이가 30년이 지나 이 학교에서 재현되고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비록 이 사건 하나가 인종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더라도 조이는 이런 작은 부분들에서부터 사회가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된다. 


정리하자면, 조나, 조이, 루스 삼남매는 흑백혼혈이 부딪히는 인종 문제 종합세트라고 할 수 있다. 인종을 둘러싼 세 남매의 인생은 인종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어떻게 한 가족과 한 개인의 삶에 파고들어 삶을 갉아먹을 수 있는지, 그렇기에 이 문제의 당사자들에게 왜 우리가 함부로 비겁하다거나 지나치게 과격하다고 비판할 수만은 없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고 당사자들이 무슨 선택을 하든 무조건적으로 정당화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이의 변화는 패배의식에 젖어있기보다는 희망을 가지라는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한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민자가 미국으로 유입되고 또 혼혈이 태어나고 있는 바, 조이의 메시지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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