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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책&영화 리뷰

킨제이 보고서 영화감상,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를 넘어서

by 피타칩스 2015. 10. 15.





킨제이 보고서 (2005)

Kinsey 
7
감독
빌 콘돈
출연
리암 니슨, 로라 린니, 크리스 오도넬, 피터 사스가드, 티모시 허튼
정보
드라마 | 미국, 독일 | 118 분 | 2005-05-13
글쓴이 평점  


실존했던 인물, 프락 킨제이 교수의 일대기를 다룬 이 영화는 프락이 자신의 보고서를 위해 개발한 성 이력 조사면담에 응답자로 참여하여 과거를 보여주는 틀을 가지고 있다.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와 자위에서부터 회상을 시작한다. 프락은 거의 모든 쾌락과 문명을 죄악시하는 개신교 목사 아버지 영향을 받아 자위는 죄이고 모든 성적인 관심에서 물러나 있을 것을 요구받는다. 엔지니어가 되도록 교육받지만 어느 날 프락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생물학을 공부하여 결국 인디애나대학 생물학 교수가 된다. 그는 여기서 평생의 동반자 맥밀란을 만나게 되는데, 성교육의 부재로 남자로서는 비참한 첫날밤을 치르게 된다. 첫날밤을 대실패로 마감한 프락은 트라우마에 갇혀 한동안 부부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러다 부부클리닉의 도움을 받아 성공을 거두고, 이를 토대로 삼아 대학 학생들에게 성에 관한 조언을 주기 시작했다. 그 조언이라는 것들은 금욕과는 정 반대되는 것들이었다.


킨제이 교수의 이러한 움직임은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끝내 킨제이 교수의 성 강좌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이 강의는 당시의 보수 기독교적 성교육 방침에 위배되는 것이었으나, 학생들의 열렬한 성원에 힘입어 나날이 수강생이 늘어났다. 그의 성 강좌에서 킨제이 교수는 수업시간에 돌린 설문지를 통해 실제 사람들은 다양한 성적 욕구와 성적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데, 이 사실은 그가 생물학자로서 gall wasp을 공부하며 얻은 지혜, “모든 벌은 정말 모두 다르기에, 다양성은 포기할 수 없는 사실이다와 결합되어 그에게 성적 다양성에 대한 일종의 깨달음을 준다.


그는 교수답게 이 깨달음을 연구로 옮긴다. 성적 다양성을 사회에 인지시키기 위한 표본 수집을 위해 성이력 조사면담을 진행하고, 게이카페에 가는 등, 다양한 사람과의 접촉을 시도한다. 심지어 제자이며 동료인, 그리고 남자인 마틴과도 연애를 한다. 이로 인해 맥과의 결혼생활이 잠시 위기에 처하지만, 곧 극복된다. 그들이 이 우기를 극복한 방법은 단순하진 않지만, 사실 단순하다. 이 세 사람은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킨제이 교수의 시대가 아니라 현재에도 있기 어려운 일일 수 있으나, 그만큼 성적 관념이 다양할 수 있고, 그 다양함과 방향은 시대를 막론한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학교 이사단과 락펠러 재단의 지원 밑에서, 킨제이 교수의 연구는 착실히 진행되어, 세상을 뒤흔든 그의 보고서 남성의 성적 행동에 관하여가 출판된다. 뒤이어 킨제이는 여성에 관한 연구도 시작했는데, 이 지점에서 그는 락펠러 재단의 지원 중단 및 사회적 반대에 부딪힌다. 그의 전작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킬 만큼 논란이 됐기 때문이 한 이유고, 여성의 성에 대해 다루는 것은 사회적으로 더욱 금기시되었기 때문이 다른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킨제이 교수는 어렵게 연구를 완성해낸다.


킨제이 교수의 이런 연구는 의미가 있었을까? 물론이다킨제이 교수의 연구는 인간의 성적 다양성을 확인하고, 이것이 자연스럽고 정상적임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 그의 노력은 성향, 성적 취향, 성관계 등을 포함한 각종 성적 다양성을 정상의 범주로 포섭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금욕적 시각에서 비정상과 변태로 분류되는 것을 정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시하고, 인간이 좀 더 성적으로 자유롭고,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는 단초를 제시한다. 이 과정이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성이 개인의 가장 사적인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사람들은 성적 정상성이라는 틀에 자신을 재단하고, 스스로를 그 틀에 맞추려 하며, 그에 따라 말 못할 고통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킨제이 교수의 수업을 들은 학생들, 성에 관한 조언을 구했던 사람들, 조사면담자들은 나는 정상인가요?” 라고 한결같이 물어왔다. 이들은 성적 정상성에 대해 항상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인터뷰실 밖에서는 이러한 물음을 꺼내지도, 꺼낼 생각조차도 하지 않는다. 왜냐면, 묻지 않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금욕적인 생활을 요구받았고, 그러한 사고방식이 굳어져 있는데, 자신의 욕망은 그것과 전혀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때, 개인이 느끼는 괴리감은 쌓이게 된다. 극히 사적인 영역이기에 그러한 괴리감을 토로할 공간도 시간도 주어지지 않아 이 불쾌한 고통은 증폭된다. 이러한 고통이 누적된 상태는 개인으로서도 사회로서도 건강한 상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킨제이 교수의 성적 담론화 시도는 매우 의미있다.


하지만, 킨제이 보고서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적 정상의 범위를 넓히는 것이 아니다. 정상의 범주를 넓히는 것은 오히려 정상성과 비정상성의 경계를 강화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상이 의미하는 바가 이만큼이나 넓어졌는데, 너는 그 정상의 범주 안에 속하지 못하니, 정말 비정상이구나!”라고 잘못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이 지점을 인식하고 있는 킨제이 교수는 정상성과 비정상의 경계 그 자체를 허물고, 다양성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길 요구한다. 실제로, 젊은 시절의 킨제이 교수는 많은 면담자들의 ‘Am I normal?’ 이라는 질문에, 나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무엇이 정상적인지, 무엇이 옳은 것인지 나는 모른다.’ ” 라고밖에 답할 수 없다는 문제인식에서 킨제이 보고서 작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동의에 의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성적 행동은 정상의 범위에 속하며, 사회는 그것을 인정하도록 변해야한다는 것이라는 견해의 변화를 보여준다.


스스로 인터뷰를 받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자신과 자기 의지에 반하는 것을 해서는 안된다. 상처를 받으면 안되니까.” 킨제이 교수가 사용한 어휘가 내 마음에 썩 들지는 않지만 이 말에 동감한다. 성적 정상성이라는 것과 나 자신, 나의 의지라는 것이 있을 때, 성이라는 매우 개인적이고 사적인 부분에서 나 자신과 나의 의지를 사회적인 정상의 틀에 구겨넣는 것은 비인간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킨제이의 어휘를 빌리자면, 이 비인간성은 개인에게 큰 상처를 준다.


그러나 이 또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정말 인간이 하는 모든 성적 행위는 참여자들의 동의 하에 모두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을까?” 라고 질문을 던질테니 말이다. 수많은 예외 케이스(범죄와 관련되는 경우의 케이스들)가 있어 이 질문에 전면적으로 당연히 그렇다라고는 하긴 어렵지만, 나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킨제이보고서를 추천하며 이 질문으로 답할 것이다. 개개인의 성적행위가 사회적으로 꼭 용인되어야 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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