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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생활/책&영화 리뷰

[창작] 눈 먼 자들의 도시, 에필로그

by 피타칩스 2015. 10. 15.



눈먼 자들의 도시
국내도서
저자 : 주제 사라마구(Jose Saramago) / 정영목역
출판 : 해냄출판사 2002.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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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눈 먼 자들의 도시 입니다. 상당히 감명깊게 읽었던 책입니다. 이 책을 2008년 겨울쯤에 읽은 걸로 기억하는데요, 그 다음해에 기회가 생겨 에필로그를 혼자 지어내 써봤습니다. 그 당시에는 없었는데, 지금은 눈먼 자들의 도시 다음의 후속편으로 눈뜬 자들의 도시 라는 책이 나와있습니다. 전 읽지 않았습니다. 이 에필로그를 그 때 쓰자마자 올렸어야하는 건데, 타이밍을 놓쳤네요.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기반으로 영화도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선 어느정도 선방할 걸로 알고있습니다. 정확히 몇 만명이 봤는지는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에필로그


  사람들이 시력을 되찾은지 십수년이 지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은 도시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눈을 뜬 한 중년 남자의 열세번째 기념일이자, 시력 회복을 축하하는 축제의 시작일이었다. 도시 전체가 열광의 도가니 속에 있을 법도 했지만 도시는 쥐 죽은 듯 조용했다. 햇빛이 너무 강해서도 아니었다. 사람들의 눈이 멀기 전 존재했던 그 어느 축제보다 화려하고 장대한 축제는 오로지 밤에만 열리기 때문이었다. 5월의 태양빛은 기억 속의 백색광을 연상시켰고, 과거 눈 멀었던 자들은 병적으로 강렬한 태양을 혐오했고, 낮 시간대에 밖에 나가길 꺼렸다. 오로지 그 역사를 경험하지 못한 어린 세대만이 옅게 그늘진 골목에서 봄의 기운을 만끽할 뿐이었다. 모든 문이란 문에는 커텐이 쳐져 있었지만, 단 한 곳 예외가 있었다. 커텐이 열어져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 곳에는 한 쌍의 노부부가 온 몸으로 햇살을 즐기고 있었다. 의사와 의사 아내였다. 그들은 많이 늙어있었다. 60대 중반의 나이에 비해 더 나이 들어 보였다. 머리는 이미 하얗게 세어 있었고,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힘들었던 과거를 증명이라도 하듯 얼굴은 홀쭉하게 말라있었으나, 그들의 눈빛만은 맑았다. 그래서였을까 베란다에 앉아있는 의사부부의 존재 자체는 골목 밑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보다 더 컸다. 이 기분 좋은 침묵 속에서, 의사 아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나이쯤 되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고 느껴야 하는데, 세상 참 안 변했죠. , 그 때와 비교해서 말인가. 그래요, 그 때랑 비교해서 말이에요. 순간, 의사 아내는 흠칫했다. 의사 부부는 그 때라고 했다. 너무도 존귀한 분을 그 분이라 부르고, 감히 입에 담을 수 없는 것을 그 것이라 부르는 것처럼, 세계가 우유빛에 출렁였던 그 시절을 그 때라고 부르고 있었다. 사실 모든 이가 그랬다. 다만, 의사 아내는 자신이 그런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을 뿐이었다. 이윽고 의사 아내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예전에도 말했죠, 눈 먼 사람들은 인간의 추악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지만 나는 보기까지 했다고 말이에요, 모든 껍데기가 벗겨지고 욕망 덩어리로의 인간을요, 나는 아직도 우리가 병동에 있을 때가 떠올라요, 우리를 비인간적으로 격리시킨 정치가들, 군인들, 정부, 병동의 무장세력, 욕구에 충실했던 사팔뜨기 소년까지, 난 전부 다 보았지요, 그 추악함을요. 그래, 그 말 다 기억하고 있어, 나도 눈을 뜬 순간 도시를 보았는걸, 의사가 대답했다. 지금 눈을 뜨고 있는 자 중에서 황폐화된 세계를 보지 못한 자는 아무도 없었다. 놀랍게도 원래 장님이었던 사람마저 모두 다 시력을 회복했기에 이 도시의 원초적이고 야만적인 모습은 한 장의 사진처럼 누구의 머릿속에나 저장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었다. 잊고 싶지 않은 기억도 잊어버리는 것이 인간이었고, 잊을 수 없는 기억마저도 잊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었다. 아무도 떠올리고 싶어하지 않는 기억을 지우는 것은 훨씬 쉬웠다. 누구도 감히 그 때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눈을 뜨게 된 사건은 그 반대였다. 볼 수 있다는 것은 인류에게 주어진 최고의 선물로 일컬어졌고, 크리스마스보다 더 성대한 열흘간의 축제는 눈 뜸을 찬양했다. 눈이 멀었던 그 때는 잊어야만 하는 악몽에 불과했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 가고 있었다. 골목에서 놀던 아이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축제기간에는 낮에 밖에 나가 놀아선 안 된다고 부모에게 꾸중을 받은 터일 것이다. 베란다에는 여전히 의사 부부가 앉아있었다. 이번에는 남편이 먼저 말을 꺼냈다. 그래도 참 다행이야, 어떻게 됐든 간에 사람들 눈이 다시 보이게 됐으니까. 정말로 다행인 걸까요. 의사 아내의 말은 혼잣말에 가까웠다. 오늘 의사 아내의 말들은 사회적으로 문제될 수 있는 발언 투성이었다. 광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면 그녀는 지금쯤 사람들에게 붙들려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끌려갔을 것이다. 이 시대의 모든 사람은 앞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였고, 이 행복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눈을 뜬 지 열세 해가 지났는데도 지칠 줄 모르고 열흘 동안 계속되는 축제는 이를 증명했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의사는 아내의 생각을 존중했고, 그녀를 정신병원으로 끌고 갈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볼 수 있는 것이 보지 못하는 것보다 다행이라는 생각만은 변함이 없었다. 병이 고쳐지는 만큼 큰 기쁨은 없지, 그가 말했다. 역시 당신은 의사인가봐요, 하지만 내가 보기엔 당신도 눈을 뜨게 되어 행복한 장님일 뿐이에요, 기분 나쁘게 할 의도는 아니었어요, 다만 사실이 그렇다는 거에요. 의사는 기분이 상했지만 아내의 말을 계속 들었다. 나는 요새 꿈을 꿔요, 사람들이 다시 백색증에 걸리는 꿈을요. 그거 끔찍하군. 그건 정말 악몽과도 같아요, 하지만 말이에요, 나는 그 꿈에서 깨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눈을 떠도 현실은 악몽이니까요. 악몽이란 말은 좀 심하군, 시력을 되찾은 덕분에 이렇게 인간답게 살고 있잖아, 의사가 대답했다. 인간답다구요, 인간답다는 말의 뜻이 도대체 뭐죠, 나는 눈 먼 시대의 사람과 눈 뜬 시대의 사람에게서 같은 것을 봐요, 정치가와 성직자는 다시 타락했고, 사람들은 욕망에 따라 움직이고, 사회는 질서를 잃어가고 있어요, 지금의 모습은 다들 눈이 멀었을 때 내가 보았던 인간의 추악함과 다를 바가 없단 말이에요, 사람들은 눈 먼 과거를 잊기에만 급급해요, 이래서는 우리를 인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우리의 내면에는 아직도 야만성이 존재하고 있어요, 사람들은 더 이상 눈이 멀지 않았고 원한다면 언제든지 야만성을 직시할 수 있죠, 이 가능성이야말로 백색증이 우리에게 준 선물이라면 선물이라고 불러야 할 거에요, 하지만 어느 누구도 감히 그 선물을 열어보려고 하지 않고 있어요. 의사 노부부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느 샌가 골목마다 하나둘씩 커텐이 걷히고 창문이 열렸다. 동쪽 하늘에서 달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 까닭이었다. 벌써부터 광장에서는 왕방울만한 눈알을 단 광대가 사람들을 모으고 있었다. 곧 축제의 마지막 광란의 밤이 시작될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노부부는 침묵을 깨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의사는 작은 미동을 보이며 자신의 두 손을 지긋이 내려다보더니, 아주 느린 동작으로 다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떨리는 손과 눈동자는 의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그는 하늘을 그대로 응시한 채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내 손을 통해 시력을 되찾았지, 하지만 당신의 말을 들으니 난 누구의 눈도 뜨게 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구려, 나는 의사지만 진정한 의미에선 당신을 의사라고 부르는 게 옳겠어, 그래 당신이 의사야. 이 알쏭달쏭한 말을 아내는 알아들었는지 아내의 얼굴에는 언뜻 희미한 미소가 나타났다.

해가 지자 바람이 차가웠다. 의사 아내는 옆에 있던 담요를 함께 덮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눈이 보이는 것도 전염병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눈이 멀어있어요, 여보.



이런식으로 작가를 모방해서 에필로그를 써보는 건 처음이라 책을 후루룩 훑으면서 몇몇 노트를 적으면서 감명깊었던 구절을 적어놓거나, 옆에 구상을 하면서 에필로그를 이러저러한 방향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한 내용이 있습니다. 그 일부를 공유합니다. 페이지는 위에 책소개로 넣어놓은 책의 페이지를 기준으로 적었습니다.



p. 461 “그녀는 쓰레기로 가득 찬 거리그곳에서 소리를 지르며 노래부르는 사람들을 내려다 보았다.” 라는 문장으로부터 눈을 뜬 것이 축제로 연결될 개연성을 찾았다.


p.395 몇 살이냐고 묻는 첫 번째로 눈이 먼 아내의 물음에 의사 아내는 오십이 다 됐다고 말한다. 13년이 흐른 후를 가정하고 있으므로현재 의사 아내와 의사는 60대 중반일 것으로 추정된다


p.190 이 소설의 설정 상눈이 보이는 사람은 아내뿐이므로 눈이 먼 세계를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사람은 의사 아내 단 한 명이다. “내가 봐야만 하는 걸 당신도 볼 수 있다면당신은 차라리 눈이 머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에요당신 말이 옳겠지하지만 그럴 필요 없어난 이미 눈이 멀었으니까.” 라는 대화에서 이는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p.55 한 가지당신도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소마지막 말은 정중하게 예의를 갖추고 있었으나의심할 여지 없는 명령이었다.”


pp. 110-112 병동에서 보초를 서던 군인은 첫 번째로 눈이 먼 남자에서 총을 난사했고총소리를 듣고 뒤이어 나온 장님들에게 너희들도 전부 날려버릴 것이라고 위협했다.


pp. 66-67 정부가 병동에 내린 열다섯 가지의 규칙 준수 명령은 비인간적이었다.


p. 234 여자를 데려오지 않으면 먹을 것도 주지 않는다.”


p. 193 음식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맨 마지막으로 음식을 먹을 때에도 사팔뜨기 소년은 항상 가장 먼저 음식을 먹어치웠고검은 색안경을 쓴 여자의 음식까지도 먹었다.


p. 456 의사가 시력을 회복하고 나서 그 전보다 더 잘 보인다고 얘기한다이를 넓게 해석하여 본래 장님이었던 사람들도 시력을 회복했다고 가정했다.


p. 189 눈이 멀었던 당시에 의사는 아내에게 사람들 눈이 멀어서 더 착해졌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말했는데이에 대해 아내는 더 악해진 것도 없다고 대답했다이로부터 모든 이가 시력을 회복한 지금의사가 아내에게 사람들 눈이 보여서 더 악해졌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면아내는 이에 대해 사람들이 딱히 착해진 것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p. 419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감버튼은 제게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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